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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6-2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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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이태원에 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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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1,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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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우유 있어요?” “어떤 우유요?” “가루 우유요.” “아, 분유 말이군요. 기름 뺀 탈지분유 드릴까요, 아니면 기름 든 전지분유?”
여느 수퍼마켓에서 들을 수 있는 평범한 대화를 나눈 사람은 방글라데시인과 인도네시아인. 외국인 이주자인 이들은 한국말을 공용어 삼아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서울 이태원 소방서 뒷길에서 이주 외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직접 목격한 상황이다.
이태원에선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의사소통 수단으로 한국말이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외국인들끼리 으레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것이란 생각은 이곳에선 선입견일 뿐이다. 한국말을 ‘징그럽게’ 잘하는 외국인도 흔하다. 또 다른 수퍼에서는 “환율 때문에 큰일 났어요. 수입 물건값 너무 올라 손님에게 미안할 정도예요”라며 능숙한 한국말로, 한국 경제 걱정까지 하면서 여러 나라 출신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파키스탄 출신 점원도 만났다. “동생 열렸어. 식당. 저번 달 신촌에서”(동생이 한 달 전에 신촌에서 식당을 열었다) 식으로 문법이나 발음이 뒤죽박죽인 ‘깨진 한국어’(Broken Korean)로 서로 떠드는 소리도 쉽게 들을 수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주한미군과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는 환락가였던 이곳은 90년대 중반 이후 외국 음식점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지금은 글로벌 음식문화의 거리가 됐다. 이 때문에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한국말이 공용어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이태원의 음식 지형은 크게 두 가지다. 해밀턴호텔 주변과 소방서 뒤로 나뉜다. 해밀턴호텔 주변은 약간 고급스러운 서구 분위기다. 현지인 주방장을 고용해 프랑스·인도·스페인·그리스·홍콩·오스트리아·불가리아·태국·호주 등 국가별 유명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한국에 근무하는 다국적 기업의 외국인 임원들이 아르마니 양복을 입고 와인이나 수입 생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이곳에선 일상적이다.
반면 이태원 소방서 뒤쪽은 조금은 서민적인 아랍·인도 음식점이 중심이다. 이 동네 식당들은 ‘난’이라는 빵이 나오는 게 공통적이다. 중동부터 인도 아대륙에 걸쳐 먹는, 누룩을 쓰지 않고 만든 납작한 빵이다. 식당마다 이슬람 방식으로 도살한 고기라는 뜻의 ‘할랄’이라는 표지가 선명하다. 무슬림(이슬람교도) 식당이라며 술을 팔지 않는 곳도 여럿이다.
이곳에서 음식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문화가 섞이는 현상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네팔인이 요리를 하고, 스리랑카인이 서빙을 하는 다국적 식당도 있다. 방글라데시 식당에서 아랍 음식을 취급하기도 하고, 파키스탄인이 운영하는 인도 음식점에서 동남아 음식을 팔기도 한다. 김치를 주는 곳도 있다. 여러 나라 출신의 이주자가 서로 복작거리며 어울려 살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차이나타운이나 아랍타운은 세계 곳곳에 있지만 이렇게 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좁은 곳에 몰려 사는 다국적 타운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태원은 이미 한국의 문화 자원이 됐다. 아랍 음식을 먹는 일본인 관광객, 인도 식당에서 파키스탄 출신 웨이터들의 서빙을 받으며 탄두리 치킨을 즐기는 독일인 주재원, 북아프리카 아랍요리 쿠스쿠스를 찾는 미국인 사업가가 몰리는 곳이다. ‘다문화 사회’를 체험 학습하는 곳으로도 이만한 장소가 없지 않을까 싶다.
채인택 피플·위크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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