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여수 화재참사에 대한 근본적 해결 의지가 없다는 국내외 비판에 직면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가운데 한국과 인력송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나라의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자진출국을 유도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입국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법무부는 4월 25일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하고 ‘숙련 생산기능인력에 대한 선별적 영주 허용 방안’을 구체화했다. 이 개정안의 핵심은 허가 신고 없이 취업할 수 있고, 회수 제한이 없이 체류기간 연장이 가능한 F2 비자를 통해, 거주자격 취득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두 사안을 중심으로, 지난달 28일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공동대책위원회> 주관 하에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선별적, 조건적 합법화”의 문제점

이주노조 이정원 교육선전차장은 “현재 한국의 이주노동자의 국가별 수가 180여 국에 달하고 있는데 인력송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10개국에만 합법화 가능성을 두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며, “전면합법화는 정부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잘못된 정책에 대한 책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정부와 인력송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국가는 중국을 포함 10개국이며, 이에 포함되지 않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전체의 20%로 4만 5천 명을 웃돌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합법화 정책 추진 후에도 계속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남게 된다. 이주노조 까지만 위원장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조건 없는 전면 합법화만이 계속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인권연대 최현모 사무국장은 “2003년 고용허가제에서 보다시피 출국 후 재입국은 비현실적”임이 드러났다며 “선별적 조건적 합법화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주인권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2003년 자진출국대상자 6만 5천 명 중 실제 출국자는 2만 6천783명에 그쳤고, 이 중 1만 6천 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F2 비자 취득 요건은 ‘비현실적’

정부 개정안의 F2 비자 취득 요건은 ‘국내에 5년 이상 합법적으로 취업하고 있는 자’ 중에서 다음 네 가지 요건을 갖춘 이들에게 한하고 있다.

첫째, 법무부장관이 고시하는 정부 공인 국가기능(기술) 자격증 소지자 또는 최근 2년간 연간 소득이 법무부장관이 고시하는 액수 이상이어야 한다. 둘째, 자신의 자산에 의하여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국어능력 등 대한민국에 영구적으로 거주할 자로서의 기본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넷째, 범죄경력이 없는 등 품행이 방정하여야 한다.

즉, 소득이 4천만 원 이상이거나 월평균 소득이 3백만 원에 달아야 하고, 3천만 원 이상의 예금 잔고가 있어야 하며, 한국어 능력 중급(3급) 이상 보유자로서 범죄 경력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이주노동자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0.3시간이고, 평균 임금은 98만 7천 43원~1백만 3천 원까지로 조사된 바 있다.

이주노조 까지만 위원장은 “언론에서는 마치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영주의 길이 열린 것처럼 보도하고 있으나, F2 비자 자격취득 요건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이주노동자를 기만하는 정책인지를 알 수 있다”며 정부 개정안의 허구성을 비판했다.

프랑스와 미국의 합법화 사례

공감의 정정훈 변호사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경제주의 관점을 극복”하고 “인권적 측면에서 정주화에 대한 적극적 논의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며 합법화의 제도를 변혁하는 데 있어 정부가 프랑스와 미국의 합법화 사례를 적극적으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프랑스는 평균 10년에 한 번 정도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면령을 내려 이들을 사회에 편입시키고 있다. 미국은 실업률이 높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많은 직장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을 무조건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3년이라는 유예기간을 두고 합법적인 체류를 허가하고 있다.

그 기간에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미국을 위해 일했다는 판단이 서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1985년 EU 회원국 간에 ‘셍겐(Schengen)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국경을 개방했다. 셍겐조약을 맺은 나라 사람들은 3개월 동안 마음대로 프랑스에 체류할 수 있으며, 3개월을 넘긴 사람들은 불법이민자 관리부서를 통해 1년 동안 매달 일정금액의 거주 수당을 받을 수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 비용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사회혼란을 수습하는 비용보다 싸다고 판단하고 있다.

1997년과 1998년 동안에 15만 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중 약 8만 7천 명이 합법적으로 프랑스에 정주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됐다.

‘합법화’ 전제는 ‘단속 추방’ 금지

이주노동자인권연대 최현모 사무국장은 “합법화 논의가 진행되는 와중에 단속 추방을 하는 것은, 정부의 고용허가제 실패를 뒤덮기 위한 과시적 전시행정에 지나지 않는다”며,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수를 줄이려는 정부의 행정편의를 꼬집었다.

또한 “단속도 꼭 구금과 강제추방으로 연결되는 반인권적 행태를 넘어서, 출국권고 같은 다른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며, 정부가 강행하는 ‘단속 추방’을 먼저 중단하는 것이 합법화 논의의 최우선적 전제라고 밝혔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우삼열 사무처장은 “전면 합법화보다 단속추방이 더 큰 문제다. 단속추방을 안 하는 것이 바로 합법화다. 합법화 이후 정부는 더 강한 단속추방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합법화 문제를 단순히 ‘이주노동자만의 문제’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한다”며, 합법화의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또한 ‘합법화 논의’가 ‘노동계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로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주노조 마숨 사무국장은 “단속 추방을 안 한다고 해서 내가 합법화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노동자로서 정당하게 대우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며 ‘합법화’의 문제가 비단 ‘단속 추방 금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정부의 단속추방을 비판하는 기사 보도에 대해 4월 16일 해명자료를 내고 “2003년도에 외국인근로자 고용허가제 시행을 앞두고 약 18만여 명의 불법체류외국인에 대해 합법화 조치를 취한 바 있음에도 2007. 3월 말 현재 불법체류외국인이 약 21만여 명에 달하고 있어 단속활동은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가 기존의 고용허가제 체계에서는 계속해서 “불법체류자”를 양산해 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이는 것이며, 정부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바꿔 임시방편이 아닌 장기적 정책의 필요성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