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과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다문화 가정은 새로운 가족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부산CBS는 가정의 달을 맞아 이들 다문화 가족을 소외시키고 있는 우리나라의 법 체계를 짚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민족' 강조하고 '인종' 빠진 헌법

'대한민국은…민족적 단결을 공고히 할 것을 다짐한다' '국가는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

헌법 전문과 9조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최고법인 헌법은 대한민국이 배달민족으로 대표되는 단일 민족주의의 가치를 갖는 국가임을 명시하고 있다.

독립 당시 국가 통합을 위해 강조된 민족주의의 전통은 그러나 단일민족에 대한 강조가 지나칠 경우 다른 민족과 문화에 대한 배타성을 키울 수 있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헌법 11조 1항, 이른바 평등권 조항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국민인 혼혈인이나 코시안 등 인종에 대한 평등 조항이 빠져 있다.

때문에 점차 국제화돼가는 우리사회를 반영해 인종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학계에서 나오고 있다.

경희대 법과대학 정태호 교수는 "인종과 언어 등의 조항을 넣어서 권력기관이나 국민에게 교육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 헌법은 모든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으로 상정하고 있다.

따라서 하위법인 법률이 보장하는 권리의 대상도 대부분 국민에 한정돼 있어 외국인과 결혼이주자 등은 아예 법체계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독일헌법 등에서 '만인의 권리'라는 용어를 사용해 기본권의 대상을 인간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헌법도 다문화 가정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일부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 출생자도 불법체류자, 교육 권리도 '방치'

지난달 27일 '재한 외국인 처우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합법·불법체류 외국인과 난민에 이르기까지 외국인과 그 자녀에 대한 법적 보호와 지원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외국인 기본법과 함께 추진됐던 국제결혼 자녀 또는 혼혈인 차별금지법안은 여전히 통과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때문에 인터넷 상의 인종차별 사이트 등 외국인이나 국제결혼 자녀에 대한 유·무형의 인종차별 행위에 대해 아직 대응이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런가하면 우리 국적법은 불법체류자의 가정의 경우 이들의 자녀가 한국에서 태어나도 자동으로 불법체류자가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이들의 자녀들은 교육기본법이 '국민'을 교육의 주체로 규정하는 바람에 교육받을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하위법인 교육법 시행령이 불법체류자 자녀의 입학규정을 뒀지만 지난해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80%가 넘는 외국인 자녀들이 국내 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하고 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지난 2005년, 외국인 자녀의 교육권과 인종차별 금지조항을 넣은 교육기본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무산됐다.

열린우리당 변재일 의원 사무실 김지환 보좌관은 "UN 아동협약에도 교육권 규정이 있고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서 개정을 추진한 것인데 당시만 해도 분위기가 달랐다. 아쉽다."고 전했다.

또 가정에 대한 보호를 실현하기 위한 건강가족기본법의 경우도 법 4조에서 국민이 꾸린 가정을 그 보호대상으로 삼고 있는 등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가정은 여전히 우리 법률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 있다.

다문화 가족, 우리 법 제도 속에 편입시켜야

'다문화 가족 지원법안', 지난 2일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 등 국회의원 17명이 발의한 법안이다.

법안은 결혼이주 외국인의 적응과 생활 상담 지원, 가정폭력 피해에 대한 통역 등 보다 강화된 지원책을 규정했다.

또 국제결혼 당사자뿐 아니라 전체 가족이 상호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국제결혼 자녀나 불법체류 외국인 자녀가 교육에서 차별받지 않게 하는 등 다문화 가족에 대한 총체적인 지원책을 담고 있다.

장향숙 의원실 김명신 보좌관은 "흩어져 있던 다문화 가족에 대한 지원책을 한데 모으고, 정부가 다문화가족을 체계적으로 지원 할 수 있도록 주안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이런 노력과 함께 최근 제정된 '외국인 처우 기본법'을 확실히 보완하는 ‘국제결혼 자녀 차별금지법’도 조속히 제정해 인종차별을 법적으로 방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교육권과 같이 인간의 공통된 권리이지만 현재 우리 법제에서 국민에게만 제한된 권리들은 외국인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구성원들이 다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숫자는 91만 명으로 이 중에는 이주노동자도 40만 명에 달한다.

또 지난해 결혼한 부부 8쌍 가운데 1쌍 꼴로 국제결혼을 한 것으로 나타나, 우리사회는 빠른 속도로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변하고 있다. 부부가 모두 외국인인 가정, 한쪽이 불법체류자인 가정, 농촌 총각과 결혼한 국제결혼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다문화 가족들이 출현하고 있다.

다문화를 이해하려는 사회적인 노력과 함께 이들을 우리 법 제도 속에 편입시킬 때 소외된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우리 사회 속에서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다.

부산CBS 장규석 기자 hahoi@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