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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1-1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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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근로자에게 모국어로 통역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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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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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가 집계한 국내 외국인 근로자는 40여만명. 불법으로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만 20만명에 육박한다. “사장이 몇 달째 월급을 안 줍니다” “일하다 다쳤는데 보상받을 길이 없나요” “다른 공장으로 일자리를 옮기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요”…. 노동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답답하고 궁금한 것이 어디 이것뿐일까.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현실은 ‘절망의 벽’과 같다. 그래서 전국 어디서나 전화 한 통으로 모국어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헬프라인’(1644-0644)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생명수’와 같은 존재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3동 한국외국인근로자 지원센터. 2004년 12월 노동부가 설립해 사단법인 지구촌사랑나눔이 위탁 운영하는 비영리단체다. 깔끔한 6층 건물의 입구에는 ‘외국인 근로자의 따뜻한 이웃이 되겠다(We may become a heartwarming neighbor for migrant workers)’는 글귀가 붙어 있다. ‘헬프라인’은 이 건물 2층에 있다.
▲ ‘헬프라인’의 언어 지원 전문가들은 모국어 통역에서 뉴스레터 발간, 인터넷 방송국 아나운서까지 담당하는 ‘멀티 플레이어’들이다.
연방 울리는 전화기 소리,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을 쓰고 상담에 열중하는 사람들. 한쪽 벽에는 세계 각국의 시간을 가리키는 동그란 벽시계 10개가 붙어 있다. 여느 ‘텔레마케팅’ 회사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다.
상담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니 세계 각국의 언어가 섞여 나온다. “안녕하세요” 한마디도 “니 하오”(중국), “샘바이노”(몽골어), “사왓디”(태국), “신짜오”(베트남), “즈드라스뷔이체”(러시아) 등 각양각색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언어 지원 전문가는 12명. 이 중 한국어와 해당 국가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외국인이 9명이다. 카자흐스탄에서 4년 동안 한국어 교사로 일한 이효정(30) 주임처럼 3명의 한국인 상담원도 현지인 수준의 외국어를 구사한다. 김상헌(48) 사무국장은 “한국어와 영어는 물론 몽골·베트남·중국·인도네시아·태국·필리핀·스리랑카·파키스탄·러시아·우즈베키스탄 등 12개국 언어의 통역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 10개국 현지시각을 가리키는 시계.
사업장 곳곳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임금체불, 체류·출입국 제도와 절차, 고용허가제, 산업 재해와 관련된 보상, 국제결혼 가정의 문제와 주택 구입, 장례, 사기와 폭행, 각종 소송 등 외국인 근로자가 잘 모르거나 답답함을 느끼는 모든 것이 ‘헬프라인’의 일감이다.
파키스탄어 통역을 담당하는 핫산 소아입(39)은 얼마 전 도움을 요청한 알람(28)이라는 환자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휴업 급여 한푼 못 받고 6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있던 친구였는데 조사해 보니 사장이 휴업 급여를 다른 직원의 통장으로 몰래 빼돌려 챙겨왔더라고요.”
이슬라마바드 남쪽 라호르 출신으로 대학에서 기계설계를 전공한 소아입은 2000년 입국해 경기도 광주에 있는 버섯 재배 기계 제작업체에서 일했다.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저녁 시간을 이용해 아르바이트 일을 하다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다리가 부러졌다. 1년여 병원 신세를 졌다는 그는 “애써 번 돈을 까먹으며 이국 땅의 설움을 뼈저리게 곱씹었다”고 했다. 눈물을 흘리며 한국을 떠난 소아입은 2004년 2월 다시 입국했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월 230만~240만원을 주는 번듯한 설계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지원센터가 문을 연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는 “월급은 100여만원 줄었지만 어려운 동포를 돕는다는 보람에 힘든 줄 모르겠다”고 했다.
‘헬프라인’의 ‘얼짱’으로 불리는 어드게렐(25)은 몽골 울란바토르 출신. 지원센터에서 1년여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다 최근 합류했다. 그는 2002년 교환학생으로 입국한 뒤 광운대에 편입해 경영학을 전공했다. “한국인 사장이 ‘같은 외국인이라고 편들어 주는 것 아니냐’며 시비를 걸어올 때는 황당해요. ‘당신과 얘기하고 싶지 않다. 한국인 담당자를 바꿔달라’고 소리칠 때는 기운이 쏙 빠지고…. 가장 기뻤던 순간? 사고를 당한 50대 아주머니가 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산재 환자로 인정받았을 때!”
한국으로 시집 온 우즈베키스탄 출신 쿨리예바(38)는 국제결혼 여성의 고민을 풀어주는 전문가다.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하기 힘든 문화적 차이, 생활을 옥죄는 가계살림, 시댁과의 갈등 등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러시아·우즈베키스탄 여성의 답답한 심정을 차근차근 듣고 함께 해결 방법을 찾는다.
‘헬프라인’은 평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쉼없이 돌아간다. 월요일과 공휴일은 쉰다. 김 사무국장은 “언어 지원 전문가와 외국인 근로자, 한국인 관계자가 동시에 전화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3자 동시 통화 시스템’을 갖춰 문제를 한층 빨리 해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신청해 3자 통화에 연결된 사업주는 처음에 대부분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회사 내부의 일을 밖에다 얘기해서 문제를 크게 만든다는 것이죠. 하지만 일단 통화한 뒤에는 오히려 이곳을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 사업장 안전수칙이나 기계 다루는 법을 그 나라말로 차근차근 설명해 달라는 경우도 많습니다.”
안타깝고 답답한 사정을 듣다 보면 통화가 짧아도 10여분 길게는 1시간이 넘도록 이어진다. 그래서 받지 못하는 전화도 꽤 있었다. 최근 연락받을 번호를 남기면 다음날 우선적으로 연결해 주는 ‘콜백(callback) 시스템’을 마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원센터 최문철(30) 팀장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입소문’이 퍼져 이용자가 크게 늘었다”면서 “전화 회선을 늘리고 싶지만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외국인 언어 지원 전문가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아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곳의 언어 지원 전문가는 1인 3~4역을 수행하는 ‘멀티 플레이어’다. 매달 한 차례 12개 국어로 펴내는 뉴스레터를 만드는 것도 이들의 몫. 고국의 ‘따끈따끈한’ 소식부터 동남아 노동자를 위한 겨울나기 건강법, 가스기구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몽골인을 위한 안전한 가스 사용법까지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가 쏠쏠하다. 인터넷 방송인 MNTV.net의 아나운서 일,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현장에서 벌어지는 통역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김 사무국장은 “이국 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를 돕는다는 사명감이 없으면 쉽지 않을 일”이라고 했다. 그가 건네 준 지원센터의 소개 책자에는 이런 글귀가 써 있었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건 여러 가지 다른 색깔이 한데 어울려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깔의 문화를 가진 외국인 근로자가 우리와 함께 어울려 하나가 되는 것을 꿈꿔봅니다.”
채성진 주간조선 기자 dudmi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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