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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0-2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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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국말 다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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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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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빨래'는 서울 대학로에서 요즘 꼭 봐야 할 작품 1순위로 꼽힌다. 150석 남짓한 지하 소극장은 20대 젊은 관객들로 늘 붐빈다. 지난 3월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에서 출발해서 알과핵 소극장으로 둥지를 옮긴 이 작품에 벌써 관객 2만8000명이 들었다. '빨래'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몽골 노동자와 한국 여성의 사랑을 주요 얼개로 삼아 2008년 당대의 사회적 현실을 호소력 있는 음악과 드라마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김민기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연변 조선족 처녀의 눈으로 본 1990년대 서울 얘기라면, '빨래'에는 2000년대 들어 '코리안 드림'에 이끌려 한국 땅을 찾은 몽골과 필리핀, 네팔 노동자들이 전면에 나온다.
필리핀 노동자 역 낫심은 외국인 노동자를 함부로 대하는 우리의 치부를 익살스럽게 노래한다. "나 한국말 다 알아. 아파요, 돈 줘요, 때리지 마세요." "빨리빨리, 이 자식, 저 자식, 개새끼…." 낫심과 함께 서울 변두리 옥탑방에 세 들어 사는 몽골 노동자 솔롱고는 동생 학비를 벌기 위해 한국에 온 지 5년째다. 그는 공장에서 월급을 떼이고, 외국인 노동자를 혐오하는 주민들에게 매까지 맞는다. 하지만 떠날 수 없다. "나를 무시하고 속이는 사람들/ 피하는 사람들 많지만/ 나는 떠나지 못해요/ 돈을 벌어 꿈을 이루겠다는/ 턱없는 희망 때문입니다."
'빨래'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인기리에 공연 중인 '인 더 하이츠(In The Heights)'와 많이 닮았다. 올해 '뮤지컬의 아카데미상' 격인 토니상 베스트 뮤지컬상과 작사·작곡상, 안무상을 휩쓴 '인 더 하이츠'는 브로드웨이에선 드물게 라틴계 이민자들이 주인공이다. 맨해튼 북쪽 중남미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워싱턴 하이츠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의 주요 배역과 실제 배우들은 대부분 라틴계 이민자 출신이다.
'인 더 하이츠'에 관객이 몰리는 것은 뉴요커들이 잃어버린 이웃 간의 끈끈한 정과 가족 간의 사랑을 흥겨우면서도 고급스러운 라틴계 음악과 춤에 담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을 끌어들일 만한 참신한 콘텐츠에 고심하던 브로드웨이가 라틴계 이주민들의 문화적 자산(資産)을 끌어안아 탈출구로 삼은 것이다. 힙합과 랩에 살사 춤이 어울리고, 스페인어 대사가 번역 없이 툭툭 튀어나온다. 덕분에 맨해튼 46번가 1350석짜리 리처드 로저스 극장에는 흑인·라틴계 관객들도 많이 눈에 띈다.
'빨래' 주인공 솔롱고 역에는 실제 모델이 있다. 1997년 관광비자로 들어와 섬유공장에서 일했던 아모라 카스쿠(Khashkhuu·32)씨다. 2005년 귀국해 몽골의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카스쿠씨는 "전체 몽골 인구의 1%가 넘는 2만8721명(2007년)이 솔롱고처럼 꿈을 좇아 한국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급여를 못 받았던 기억과 좋은 추억이 뒤섞여 있는 한국은 내게 두 번째 고향"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미국과 같은 이민 사회는 아니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 50만 명(불법체류자 23만 명 포함·2007년 말 기준)과 외국인 유학생 5만 명을 포함, 106만6291명의 외국인이 우리와 부대끼며 살고 있다. 귀국길에 오른 이들이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할지, 임금 체불과 인종 차별의 어두운 기억을 갖고 갈지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 확실한 것은 관료들의 책상물림 '다(多)문화정책'보다는 대학로의 젊은 연극인들이 만든 '빨래'가 해답에 훨씬 가까워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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