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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3-0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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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두박질 친 원화에 주머니만 마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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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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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열두번씩 들어오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공부하겠다며 남의 나라 땅에서 고생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차마 포기하라는 말은 입 밖으로 떨어지질 않는데요.”
한 대기업의 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K씨. 그는 캐나다에 고등학생, 중학생 딸 2명과 아내가 가 있는 ‘기러기 아빠’다. 기러기 아빠 힘든 거야 당연한 얘기지만 올 들어 그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 원화 대비 달러가치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기러기 아빠들이 부담해야 할 유학 지원비가 더욱 커진 것이다.
고공열차라도 타는 것마냥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환율 소식에 울고 웃는 세상. 원저(低)에 울상 짓는 이들이 늘고 있다.
◆기러기 아빠, “학비가 두배는 늘어난 것 같다”
2년 전 중학생인 아들과 부인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 박모씨. 그는 요즘 통장을 보면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유학을 떠날 당시인 2007년 당시만 하더라도 900원대를 웃도는 수준이었던 원/달러 환율이 이제는 1500원대를 돌파했다.
박씨는 “학비가 같더라도 여기서 보내줘야 할 원화는 더욱 늘어난 데다 아이가 커 갈수록 교육비가 더욱 많이 들어갈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고 털어놨다.
그는 “가능하면 목돈은 환율이 떨어진 뒤 보낼 생각에 기다리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아이 학비나 당장 필요한 생활비 등은 미룰 수가 없는 것 아니냐”고 울상 지었다.
그는 “지난해 초에 비해 환율이 1.5배 정도 올랐지만 실제로 보내는 금액은 2배 이상 늘어난 것 같다”며 “회사에서도 기러기 아빠들이 둘만 모이면 자녀 유학비 걱정하는 문제로 한숨 그칠 날이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4년 전 호주 멜버른에 두 자녀를 유학 보낸 김모씨 또한 비슷한 사정이다. 2005년 유학 보낼 당시만 하더라도 600원대였던 호주달러 환율은 이제 970원을 오르내린다. 50~60% 정도 환율이 급등한 셈이다.
김씨는 “요즘에는 원/달러 환율을 액셀로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며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송금시기를 파악하려다 보니 환율에 더욱 민감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환율 때문에 유학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아이 엄마와 함께 귀국을 진지하게 의논해 보기도 했다”며 “하지만 해외에서 오랫동안 공부해오던 아이를 갑자기 한국으로 불러들이기도 쉽지 않았다”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
김씨는 “일단 부부가 생활비를 최대한 줄이더라도 아이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며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회사 사정도 좋지 않은데, 환율로 가계부담까지 늘어난 셈이어서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한숨 지었다.
◆영세 수입업체들도 휘청 “하루아침에 물건 값이 2배?”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 직장인 이모(29)씨는 최근 사료를 구입하러 동물병원에 들렀다 깜짝 놀랐다. 한달 사이에 고양이 사료 값이 두배 이상이 뛰어오른 것이다.
예상보다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된 이씨가 지갑 열기를 주춤거리자 수의사가 “그나마 사료를 구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애완용품의 경우 최근 환율이 급등하면서 거의 '사료 전쟁'에 가까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종로구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정윤 수의사는 “달러가 올라가면서 수입업체들이 재고를 더 들여오지도 못하고 있는 물건만으로 시중에 유통하다 보니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애완용품만 하더라도 가격이 2~3배나 뛰어올랐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도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상황을 전했다.
중소 의료기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환율 상승으로 치료재료의 수입 가격이 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치료재료의 가격이 인하되면서 수익이 감소한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환율 급등 탓에 수입비용마저 급등하자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는 업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그는 “이미 업체들 사이에서는 대학병원마다 치료 재료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의료기기업체들의 공문이 한가득 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다"며 “환율이 안정될 때까지만 버텨보자는 마음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한숨을 쉬었다.
공정무역커피나 초콜릿을 수입하고 있는 업체들도 시름이 짙어졌다. 동티모르 등에서 공정무역커피를 수입하고 있는 한 업체의 관계자는 “지난해 매입해 놓은 물량으로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지만, 중소업체의 입장에서는 당장 몇달 뒤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달러가 너무 급격하게 치솟는 바람에 대응조차 할 시간이 없었다"며 “지금 당장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 피해가 너무 커서 걱정이 많다"고 털어놨다.
그는 “주로 제3세계에서 영세한 업체들의 물건을 사들여 오기 때문에, 지금처럼 수입을 줄일 수 없는 상황이 더욱 안타깝다"고 말했다.
◆외국업체 “한국에 물건 팔기 정말 어려워졌어요”
한국에서 생활하는 일본인 후지키 하루토(37)씨는 요즘 근심걱정이 떠날 날이 없다. 일본의 한 전기회사에 다니는 그는 한국 해외영업부분을 맡아 4년 전 한국으로 들어왔다. 삼성, LG 등 대기업에 자동화 관련 기기를 수출하는 것이 그의 주 업무.
최근 엔고 현상으로 인해 일본 업체의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비즈니스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보통 자동화기기의 부품 중 하나인 모니터 가격은 엔화로 계산하자면 6만~7만엔 정도. 한국 업체와 거래를 할 때는 이를 원화로 바꿔 다시 거래하게 된다.
하루토씨는 “예전에는 6만엔 정도면 한국 돈으로 계산해 60만원 정도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마진을 붙여 판매를 하더라도 100만원 미만으로 가격이 책정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요즘에는 같은 가격이라도 원화로 계산하면 100만원을 한참 더 넘어서기 때문에 곤란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보통 한달이나 두달에 한번쯤 업체들과 공급 가격을 조정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진땀을 뺀다. 그는 “한국업체들과 계속 거래를 해 오던 상황이니 하루아침에 판매 가격을 올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손해를 보고 팔 수도 없지 않냐”며 “우리 입장에서는 마진율을 줄여서라도 예전과 비슷한 가격에 공급하려고 노력하지만, 한국 업체들은 예전보다 지불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불만이 쌓여가는 것 같다”고 울상 지었다.
이어 그는 “일본 회사에 근무하지만 월급을 원화로 받기 때문에 괜히 억울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며 “업무 특성상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일을 진행할 때가 많은데, 요즘에는 그마저도 비행기 값 때문에 부담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외국인노동자, "고국 송금 줄어, 한산한 은행 풍경"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한국 외국인 근로자 지원센터. 이곳 1층에는 중국인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전문으로 하는 외환은행 창구가 따로 마련돼 있다. 고국에 송금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ATM기 한대와 여직원 한명 뿐이 전부인 작은 사무실이지만 한국에서 일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에게는 ‘말이 통하는 여직원’이 있으니 그 어느 곳보다 편해서 자주 찾게 되는 은행이다.
이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이는 형려미(27) 씨. 한족 출신인 그는 중국 외환은행 대련지점에서 근무하다 한국 파견 근무에 지원해 이곳에서 생활하게 됐다. 지난해 8월 말 그가 한국에 들어올 때만 해도 원/위안 환율은 1만원에 60위안 정도. 하지만 6개월 만인 지금, 위안화 강세로 인해 1만원은 44위안 정도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형씨는 “한국에 올 때만 해도 일요일까지 영업을 할 만큼 사람들이 많았다"며 "몇시간씩 줄을 길게 서서 송금을 하던 풍경이 이제는 은행을 찾는 이들조차 줄었을 정도로 한산해 졌다"고 말했다.
그는 “환율 때문에 원에서 위안화로 바꿀 경우 예전과 액수가 절반이나 줄었다"며 "지금 중국에 돈을 보내면 손해라는 생각 때문에 중국 가족에게 정말 돈이 급한 경우에도 한국에서 돈 보내는 대신 중국 친구에게 빌려 쓴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원에서 위안으로 환전을 요구하는 손님도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당연하다.
형씨는 “고국에 돈을 보내지 못하니까 목돈을 그대로 쌓아두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최근에는 금리까지 떨어지면서 일반 통장에 돈을 저축해도 이자도 없고, 적금 같은 경우는 오랜 기간 동안 돈을 못 빼니까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쉽지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내가 아는 한 부부는 한국에서 2~3년 동안 돈을 모아 중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위안화로는 액수가 예전보다 훨씬 적어져서 한국에 더 오래 머물기로 했다”며 “요즘에는 환율 때문에 불법체류자도 많아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형씨는 “당장 지난번 설만 하더라도 비행기 값이 올라 중국에 가지 못한다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며 “중국 가족들에게 전화해서 목소리 한번 듣는 것도 빠듯한 생활비를 생각하면 조심스러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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