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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1-3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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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사회와 그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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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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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섭 문화평론가
연전에 방한한 중국 관료를 대상으로 한국문화를 소개할 때 한 젊은 공직자가 ‘태극이 중국 것인데 왜 한국 국기로 둔갑했냐’고 물어왔다. 당시 동북공정 문제로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 탓인지 다소 도발적인 질문이었다. 문화란 원래 생겨난 곳에서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이고, 생겨난 곳보다 전래된 곳에서 더 활발하게 발전한다는 문화전파론의 원론으로 답한 적이 있었다. 먼 옛날에도 문화는 국경을 넘어 교류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마셜 매클루언이 ‘지구촌’을 작명한 지 채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이제 국적과 영토로서 문화적 정체성을 구분하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 문화적 트렌드가 국경과 민족을 넘나든다. 지금까지 익숙한 문화적 틀 안에서 글로벌 변화를 논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되었다.
우리와 함께 사는 외국인이 100만명이 넘었다. 80년대 후반부터 우리 산업구조의 허약한 부문을 메우면서 국가경제의 한 축을 유지하는 데 일조한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가족구조의 취약한 부문을 여성 외국인이 채워주고 있다. 이름하여 외국인며느리이자 이주혼의 한 상대자이다. 명절 TV프로그램에선 외국인며느리들이 차례 음식을 만들고, 그들의 고향식 조리방식으로 제수를 만드는 신기한 모습도 등장했다. 다문화가족의 2세가 다수를 차지하는 농촌학교 교정은 더는 이상한 풍경이 아니다. 외국인은 이제 우리의 일부이다.
문제는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이나 혼인배우자로서만 기능하는 인력이 아니라는 점이다. “노동력을 불렀는데 사람이 왔다.” 우리보다 반세기 먼저 외국인노동자를 유입한 서구사회의 금언이다. 다른 ‘사람’, 곧 다른 문화가 왔다는 것이다. 그 다른 사람과 그들의 문화를 인정하는 것이 다민족, 다문화사회의 기본 전제이다. 선진사회에서는 인본주의와 계몽주의에 뿌리를 둔 열린 세계관의 교육과 문화적 이해로써 다문화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리 사회는 이방인과 타문화에 열린 사고를 가지게 하는 교육의 부재도 문제지만 단군조상 후예로 단일민족이라는 엉뚱한 핏줄과 그에 내재한 문화적 전통에 대한 우상론도 심각한 수준이다. 민족과 문화적 전통의 순수성 강요는 근본주의적 이데올로기나 특정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폐쇄된 사고 이외는 설 자리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회적 진보를 논하기도 어렵고 글로벌사회를 선도할 문화적 위상 확보도 쉽지 않다.
우리는 100년 전 열강의 노리개로 전락한 조국에서 밖으로 나가던 민족이었다. 이 한민족 디아스포라(Diaspora·離散)가 현재 세계에 600만 이상 거주하는 우리 교포의 선조들이다. 세계 곳곳에서 정착해 제2의 조국으로 뿌리를 내린 우리 민족의 끈질긴 저력이라고 자부한다. 혹자는 이들을 우리의 세계화 첨병이요, 국가의 자산이라 한다. 21세기 동시대를 함께 사는 속좁은 인사들의 아전인수격 해석이자 의식구조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일까. 나는 그들의 ‘성공적인’ 정착에는 그곳의 사회문화적 환경도 중요한 몫을 한다고 본다. 새로운 정착사회에서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민국은 차이나타운이 실패한 국가이다. 그 정도로 배타적인 외국인 선입견과 배척현상이 상존한다. 우리가 필요로 해서 불러들인 외국인 노동자, 외국인며느리에 대한 비인격적 대우에 대해 작년에는 국제기구가 경고하고 나섰다. 멀리 세상 밖을 볼 것도 없다. 단일민족이라는 엉뚱한 순혈주의와 폐쇄적 문화관을 넘어서서 우리 안에 세계가 있음을 보아야 미래가 열린다. 다민족사회를 앞서 경험한 나라들이 법치주의에 근거한 국가원리로서 다문화사회를 자동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기대는 가망 없다는 것을 이미 보여주었다.
이장섭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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