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그들은 앉아서 죽음을 기다렸다. 매캐한 연기가 나자 벌떡 일어나 쇠창살 문으로 달려갔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11일 새벽 3시40분께 전남 여수시 화장동 법무부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 수용시설 304호. 중국 산둥성 출신 쉬레이(31)는 잠이 오지 않아 침실에서 눈을 뜬 채 뒤척이고 있었다. 8명이 수용돼 있던 304호엔 재중동포 김명식(39·사망)씨 혼자만이 휴게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김씨는 이날 새벽 3시50분 304호 폐쇄회로 텔레비전 카메라를 화장지로 가리다가 감시실의 용역 경비원한테서 제지당했다. 5분 뒤 304호 텔레비전 쪽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기 시작했다. 쉬레이는 “불이야!” 하고 김씨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쇠창살로 둘러싸인 휴게실 쪽으로 나갔다. 그는 “출구 쪽으로 나가 쇠창살 문을 두드렸지만 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쇠창살에 갇혀 있던 다른 수용자들도 쇠창살을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울부짖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305호에서 잠을 자고 있던 쉬전쿠이(42)는 유독가스가 퍼져가자 감시석에 있던 경비원에게 ‘아저씨, 아저씨, 문을 열어달라. 빨리빨리’라고 외쳤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며, “침실 안쪽 화장실과 샤워실도 쇠창살로 막혀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고 말했다. 같은 방에 있던 자오시엔인(33)도 “우리 동료들은 안에서 죽음을 기다렸다”며 “우리의 인권과 생명이 위협받았다”고 말했다.

화재 당시 이 건물 3층 감시실에는 경비용역 업체인 ㄱ사 직원 ㅂ씨와 ㅈ씨 등 2명이 근무 중이었다. 용역사 직원 2명과 법무부 직원 1명이 합동근무를 해야 하는 규정을 어긴 채, 법무부 직원 4명은 모두 2층 상황실에 있었다.

불이 나자 ㅂ씨는 소화기로 불을 끄려 했고, ㅈ씨는 2층으로 보호실 열쇠를 찾으러 갔다. 근무규정대로 법무부 직원이 열쇠를 갖고 현장에 있었다면 즉각 조처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보호실 바닥 우레폼 장판이 타면서 유독가스가 순식간에 번졌다. 용역사 직원과 법무부 직원들이 열쇠를 들고 달려왔지만 몇 분 만에 유독가스가 3층 전체에 가득차 복도에서 가까운 301호만 문을 열고 8명을 구조했다. 나머지 보호실 5곳의 수용자들은 출입구 쪽 쇠창살 문이 열리지 않자 각 보호실의 화장실 안으로 대피했다.

이미 열린 301호를 제외한 나머지 보호실 5곳의 쇠창살은 발화 뒤 14분이 지나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열었다. 용역사 직원들이 초기 진화를 하느라 발화 9분 뒤에야 소방서에 뒤늦게 신고하고 열쇠를 찾느라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허비한 게 화를 키웠다. 소방대원이 달려오는 사이 수용자들은 하나둘 쓰러져 갔다. 김용상 여수출입국관리소 관리과장은 “합동근무 규정을 어기고 직원들이 2층에 있었던 이유를 모르겠다”며 “경찰이 화재원인뿐 아니라 이 부분도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2005년 1월 지상 4층 지하 1층 연건평 7257㎡ 규모로 준공한 이 건물은 카메라와 쇠창살 등 감금시설은 철저하게 갖췄으나, 최대 250명을 수용하는데도 천장에 살수장치를 설치하지 않는 등 소방시설이 허술했다. 살수장치는 건물 규모가 작아 지하에만 있을 뿐 1~4층에는 설치하지 않았고, 3층에는 옥내 소화전 2기만 있었다. 보호실 바닥을 탈 때 유독가스를 내뿜는 우레폼 장판으로 시공한 것도 인명피해를 키웠다.

결국 이날 불로 예르킨(47·우즈베키스탄인)과 김성남(51·재중동포)씨 등 외국인 9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

여수/정대하 안관옥 이재명 기자 daeha@hani.co.kr